존 리스트 사건 : 20년만에 잡힌 희대의 가족 학살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것인가요?
돈 ? 사랑? 명예? 그 어떤것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 1순위 놓는 것은 아마 가족일 것입니다.
근데 오늘은 이 소중한 것을 자신의 손으로 지워버린 끔찍한 사건에 대해 알려드릴려고 해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존
존은 아내와 자식 3명(딸1, 아들2)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791년 9월 11일 존은 자신의 손으로 모든 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했습니다.
우선 아내는 헬렌을 총으로 쏘고, 자신의 어머니 또한 짧게 입을 맞춘 후 뒤통수에 총을 쐈습니다.
이 와중에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어 돌아온 첫째 딸을 또 총을 쏴 죽인 후 13살인 막내 아들 또한 총을 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존은 즉결 처형과도 같은 스타일의 살인 방식을 택했죠. 존은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르길 바랐거든요.
하지만 마지막 남은 둘째 아들 존 주니어는 눈치가 빨랐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상태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총알에 맞았고 즉사하지 않았죠.
결국 존은 둘째 아들 심장에 계속해서 총을 쐈습니다. 추후 부검 결과 둘째 아들은 몸에서 10발의 총자국이 발견되었죠.
그렇게 가족 모두를 살해한 조는 가족들의 시신을 저택에 큰 연회장에 눕혀 놓았습니다. 그리고 각 시신마다 쪽지를 남겨 자신이 왜 그들을 죽였는지 이유를 써놓았죠. 어머니의 시신은 너무 무거워서 연회장이 아닌 다락방에 그대로 남겨두었는데 이런 사소한 것까지도 적어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존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 5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편지에는 자신은 세상에서 너무 많은 악을 보았으며, 가족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죽였다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왜 이런 짓을 벌였을까?
1. 강압적인 어머니
존 에밀리스트는 1925년 9월 17일 미국 미시건주 베이시 독일계 미국인 부모 사이의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존의 어머니는 매우 강압적이면서도 과잉보호가 심했습니다.
어머니가 허락해 주지 않으면 존은 집 근처를 벗어날 수 조차 없었죠.
그러다 보니 존은 자연스레 또래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고, 친구 한 명 없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2. 아내의 편집증
존의 아내는 알코올 중독과 매독이라는 성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매독이란 것이 주사 한 방에 낫는 병이지만 당시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이것이 존에게서 옮은것이 아닌 첫째 남편에게 옮아 존과 결혼한 것이였죠. 그것도 몰래..
병세가 깊어질수록 그녀는 술을 더 많이 마시기 시작했고,이 모든 것은 존의 아내를 신경질적인 편집증 환자로 만들었죠. 아내는 공개적으로 존의 성적 능력을 자신의 전 남편의 성적 능력과 비교하며 존에게 수치심을 주기도 했습니다.
3. 경제적 어려움
1971년 저지시티 은행이 폐쇄되면서 존은 갑작스레 직장을 잃게 됩니다. 뭐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이야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만한 일이죠. 하지만 존 리스트는 벌려놓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정기적인 급여가 사라지자 순식간에 생활비와 주택 유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재정난을 겪게 되죠. 구력감과 불안감에 휩싸인 존은 이 상황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여전히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옷을 차려 입고 출근 시간에 집을 나서죠.
낮 동안 주로 여러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거나 보험 판매를 하거나 기차역에서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신문을 읽곤 했습니다. 하지만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집 재정 상태는 더욱 나빠져만 갔습니다.
4. 삐뚤어진 신앙심
존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루터 교에 신앙심이 깊었는데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자신이 기도하면 그 죄가 사해지고,
가족 또한 천국에서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교도소에서도 자신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사라진 살인자 존
원인이야 그렇다 치고, 살인을 저지른 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러한 극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존은 20년동안 잘살았다고 합니다.
편지에다 많은 증거를 남겼기에 존이 범죄자인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증거에도 마치 흔적도 없이 존은 사라졌을까요??
존은 살인 후 기차를 타고 뉴저지에서 미시간까지 그다음에는 콜로라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1972년 초 덴버에 정착하여 자신의 대학 동창의 이름 로버트 피터바 크로 라는 가명을 사용해 새 삶을 시작하죠.
로버트가 된 존은 이전의 삶을 거의 완벽히 재건해 냈습니다. 1979년부터 1986년까지 덴버 외곽의 종이상자 제조업체 감 시간으로 일했고, 지역의 루터교 교회에 가입하였으며, 차량이 없는 교회 회원들을 위해 카프를 운영하기도 했죠. 또 종교 모임에서 들로레스 밀러라는 여성을 만나 1985년에 결혼도 했습니다. 체포 1년 전인 1988년 2월에는 아내와 함께 버지니아 주 의사였고, 계속 로버트 피터바 클라크로 살아가며 회계사 일 역시 제개했죠. 겉에서 보았을 때 누가 봐도 독실하고 성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평판도 좋았죠.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경찰들은 여전히 20년 전 가족을 죽인 냉혈한 존 에밀리스트를 찾고 있었고, "America's Most Wanted" 통해 몽타주를 공개한 순간 이웃이 신고를 하면서 경찰에 잡혀간 것이죠.
훗날 존 리스트는 투티 투엔티라는 미국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 생각을 밝혔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그들은 나를 용서했거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