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도감/해외편

로노크 섬 주민 증발 사건 : 115명이 증발했다.

해금도감 2024. 6. 18. 19:42
반응형

로노크 섬의 발견과 식민지 건설!

 

1584년 영국의 월터 롤리가 로노크 섬을 발견하고, 이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의 허락을 받아 식민지를 설립하려던 롤리는 원정대를 파견했고, 원정대는 로노크 섬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현지 인디언과의 물물교환을 통해 친근한 관계를 맺었으나, 때로는 약탈도 일삼았습니다.

 

식민지 개척 실패와 재방문!

 

1587년, 롤리는 115명의 남성, 여성, 어린이로 구성된 새로운 개척민들을 이끌고 다시 로노크 섬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을 이끈 것은 존 화이트라는 롤리의 친구였습니다. 존 화이트는 이전 탐사대가 실패한 이유가 원주민과의 갈등 때문이라 판단하고, 원주민들에게 우호적으로 대했습니다. 선물도 나눠주며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했지만, 식량 부족과 척박한 땅은 개척민들의 생존을 위협했습니다.

결국 개척민들은 존 화이트에게 영국으로 돌아가 도움을 청하라고 요구했고, 존 화이트는 보급 물자를 얻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의 증발!! - 영국에 갔다 오니 모두가 사라졌다.

존 화이트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 여러 차질로 인해 다시 로노크 섬으로 돌아가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1590년, 존 화이트는 드디어 로노크 섬에 도착했으나, 개척민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전투의 흔적도, 해골도 없었습니다.

유일한 단서는 "Croatoan"이라는 글자가 나무에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화이트가 개척민들에게 만약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면 행선지를 기록하라고 당부한 내용과 일치했으나, 행선지에 대한 정보는 더 이상 얻을 수 없었습니다.

 

증발의 가설

1. 파우아탄 족의 공격

이 가설은 파우아탄 족 족장이 "우리 동맹의 참여를 거부한 체서픽 족이라는 부족과 함께 살고 있길래 우리가 전부 없애 버렸다"라는 말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증거 부족과 당시에 해골이나 피의 흔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낮습니다.

 

2. 스페인의 공격

당시 전쟁 중이던 스페인이 로노크 식민지를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페인은 프랑스의 식민지를 파괴한 전적이 있었지만, 1600년대에 영국 식민지를 찾아다녔다는 기록이 없어 이 가설도 사장되었습니다.

 

3. 해상 조난

가장 유력한 가설은 개척민들이 해상 조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섬에는 흔적도 뼈도 없었기 때문에, 섬에 남은 주민들이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체적으로 항해에 나섰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실제로 존 화이트가 로노크를 떠날 때 소형 선박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이 가설이 가장 말이 됩니다.

하지만 왜 물건들을 남겨 놓고 갔는지, 나무에 새겨진 "Croatoan"이라는 글자의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로노크 섬 주민 증발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사라진 식민지로 불리며 미국에서는 꾸준히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역사 속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 것으로 보입니다. 로노크 섬 사건에 대한 다양한 가설과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언젠가 이 미스터리가 풀릴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