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도감/해외편

차르 봄바 -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폭탄의 탄생

해금도감 2023. 3. 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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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 봄바가 세상에 나온 배경

 

냉전 시대의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원자 폭탄 리틀 보이와 팻맨을 보고 앞으로의 전쟁에서 가장 유효하고 강력한 무기가 핵폭탄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1961년 7월 10일 소련의 니키타 총리는 핵 개발 학자들에게 16주 안으로 초강력 폭탄을 개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미국의 핵폭탄보다 강력한 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리셋해야했기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폭탄을 설계했습니다.

미국의 방식이 핵분열 방식의 폭탄이었고 소련은 핵융합 방식의 설계를 선택했습니다.

핵융합 즉 수소 폭탄은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으면서 그 파괴력은 핵분열 폭탄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그렇게 16주 후 짧은 기간안에 차르봄바라는 초강력 폭탄이 완성됩니다.

 

차르봄바의 위력

 

완성된 폭탄의 위력을 파악하기 위해 1961년 10월 30일 안드레이 체프 소령은 27톤의 차르봄바를 수송하기 위해 폭격기에 탑승했습니다. 안드레이는 폭격기를 고도 10 KM까지 상승 시킨 후 차르 봄바를 투하했습니다. 폭탄은 800KG 에 달하는 낙하산을 단 채로 투하되었는데 그 이유는 낙하산으로 인해 차르 봄바의 낙하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터지기 전에 안드레이가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했기 때문입니다.

상공 4KM 부근까지 폭탄이 투하되자 내장되어 있던 기압 센서 퓨즈가 작동하여 차르봄바가 폭발했습니다.

그 폭발력은 무려 50MTon으로 일반적인 TNT 폭탄 5천8백만 톤을 터뜨린 것과 비슷한 위력이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리틀보이의 3,500배나 달하는 파괴력입니다. 터지는 순간 발생한 에너지는 1.4초 동안 전 지구에 닿는 모든 태양 에너지를 합친 것과 비례했습니다.

실험 장소 금방 35킬로미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백 킬로미터 범위까지 3도 화상을 입을 수 있는 강력한 열이 발생하였으며 폭발로 인한 섬광은 천 킬로미터 떨어진 핀란드에서도 관찰되었습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이 실험을 본 미국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기술력이라면 미국도 뒤쳐지지 않았지만 이런식으로 폭탄 경쟁으로 치닫다가는 정말 한방에 인류를 끝장 내버릴 무기가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핵실험 금지 조약에 서명을 하였고 이 후 유엔 총회에서는 모든 장소에서, 어떠한 핵실험도 금지한다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이 발표되지만 많은 나라들이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북한을 포함한 몇몇 나라는 서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은 갖은 이유들로 인해 26년째 발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며 주변국들에게 핵카드 까지 언급하며 협박을 가하는 상황입니다.

러시아는 무려 4500개의 핵탄두를 비축한 나라입니다.

5400개 정도의 핵을 가진 미국과 비교해 보아도 대등한 수준입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이미 차르 봄바를 만들었던 기술이 있는 국가로써 60여 년이 흐른 현재는 그 핵 기술들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 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핵을 보유한 모든 나라들에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이며 만약 전쟁이 핵전쟁으로 치닫는다면 그것은 정말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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