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도감/해외편

마녀 사냥 - 인류 최악의 집단 사냥

해금도감 2023. 5. 2.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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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부터 17세기의 집단 광기 유행 - 마녀사냥

14세기부터 17세기 사이 유럽에는 종교 재판이라는 이름의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약 300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같은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피고는 누구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숨어서 사는 사람, 타인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사람 심지어 이미 마녀라고 지목을 받아 투옥되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목해 함께 사형대에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이 종교 재판이 바로 그 유명한 마녀사냥입니다. 

고문받는 마녀

당연하게도 마녀로 지목된 이들은 주술을 사용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벌어진 전쟁, 기근, 전염병이라는 불행을 탓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목되어 왔던 이들은 누군가의 변호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마녀 재판에 사용되는 모든 비용은 마녀 본인에게 청구되었습니다. 마녀로 지목된 이는 대부분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그들이 죽고 나면 재산을 몰수하여 재판관들의 배를 불리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마녀를 가려내는 방법

재판의 시작은 보통 누군가의 고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발을 당한 사람이 재판에 올려지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가 마녀인지 아닌지를 증명을 했어야했는데 그 과정은 보통 4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1. 눈물 시험

 우선 당시의 관념으로 마녀는 사악한 존재이기에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것이 사실로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마녀재판에 올라간 사람은 눈물 시험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걸쳐야했습니다.

 

2. 바늘 시험

그러나 이것을 통과하게 되면 악마의 도움을 받아 눈물을 흘린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는 바늘 시험이라는 단계라는 테스트를 거쳐야 했습니다. 당시에 마녀들은 악마와 계약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가지고 있는데 이 흔적은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피도 흐르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마녀로 몰기 위해 사마귀를 찾는 사람들('마녀시험'-톰킨스 H,매티슨)

그래서 재판관들은 마녀로 지목된 사람들을 나체로 관찰하다가 신체의 특이한 부분이 있으면 바늘로 찔러 피가 나오는지 혹은 고통을 느끼는지 관찰했습니다.

 

3. 불 시험 

 하지만 어이없게도 여기서도 피가 나오거나 고통을 느낄 경우 악마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세 번째 시험으로는 달구어진 쇠로 마녀를 지지거나 불판 위를 걷게하는 방식의 끔찍한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서 상처가 생기지 않으면 마녀라는 것이었죠. 보통의 인간은 이 시험에서 절대로 상처가 나지 않을 수 없고 또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기에 재판관들은 이 시험을 승낙하는 것 자체가 마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4. 물 시험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에 던져 넣어 물 밖으로 밀려 나오는지 봤습니다.

예로부터 물은 아주 깨끗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왔기에 악한 것이 들어가면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만약 마녀로 판단되는 이가 밖으로 밀려나오지 않고 물 안에 있게 되면 마녀가 아닌 것이고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오면 마녀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마녀는 없었기에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올리는 없고 물 안에서 밀려나오지 않으면 익사로 죽음을 맞이하게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재판 자체로 사형이나 마찬가지였던 시험이었습니다

 

마녀 재판의 배경

사실 처음부터 마녀가 사악한 존재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혼자 사는 여성들 아이들과 친밀한 존재로 주술을 사용하여 약한 이들을 돕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의사, 약사, 산파 , 무속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마녀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1317년 요한 22세에 교황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암살 자체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교황을 죽이러 했던 것이 다름 아닌 교회의 고위 사제였으며 암살 방법은 마녀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주술이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계기로 주술은 악하고 잘못된 것으로 인식되었고 마녀 또한 다정하고 정겨운 존재가 아니라 사악한 존재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484년 12월 5일 인노첸시오 교황은 <지고의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라는 칙서를 발표하는데 그 내용은 '사악한 주술을 행하는 주술사들과 마녀를 단죄하고 이들에 대한 이단 신문관의 조사를 지지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교황이 마녀 사냥을 허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486년 독일의 이단 심문관 하인리히 크라메르는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이라는 책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책의 내용은 마녀의 정의, 마녀를 구별하는 법 등이 적혀있었는데 마녀의 피해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문으로 인한 자백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 책은 마녀 사냥의 기초가 된 동시에 마녀 사냥에 기름을 끼얹게 됩니다. 

 

마녀사냥의 끝

시간이 지나 1680년 유럽에서는 마녀를 처벌하는 것이 아닌 마녀인 척 하는 이들을 처벌하라는 법령이 선포됩니다. 이때부터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이 끝나갔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2000년 3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억과 화해 : 교회의 과거의 잘못> 이라는 문건을 발표합니다. 이 문건으로 과거 교회가 신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처참한 잘못을 최초로 인정하고 마녀 사냥에 대하여 전 세계적으로 사죄한 것입니다.  그렇게 집단 광기로 퍼져버린 마녀 사냥은 카톨릭의 인정과 사과를 끝으로 역사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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