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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수호자, 비극의 희생양 세스닉 수녀

1969년 11월 7일,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캐서린 세스닉 수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녀는 키어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이었으며, 선물을 사러 외출했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세스닉 수녀

두 달 후인 1970년 1월 3일, 사냥을 나온 한 가족에 의해 세스닉 수녀의 시신이 외딴 숲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부검 결과, 그녀는 두개골 골절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경찰은 여러 명의 용의자를 조사했으나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사건은 미제로 남았습니다.

 

범인은 누구?

세스닉 수녀의 죽음과 관련하여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조셉 매스컬쳐 신부였습니다. 

 1. 여러 수녀들의 증언

여러 피해자들은 조셉 신부가 자신들을 성폭행하고 협박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한 피해자는 고해성사에서 친족 성폭행 사실을 고백한 이후 그것을 빌미로 조셉 신부의 타겟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2. 시신 목격

한 졸업생은 세스닉 수녀가 실종된 후 조셉 신부가 자신을 차에 태우고 세스닉 수녀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고 증언했습니다.

조셉 신부는 이 시신을 가리키며 "이 사실을 발설할 경우 너도 이렇게 될거다." 라는 협박도 했다고 합니다.

 

3. 수상한 방문 기록

세스닉 수녀가 실종되기 전날, 조셉 신부와 매그너스 신부가 캐리지 하우스를 무작정 방문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세스닉 수녀의 실종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신부가 체포되지 않았던 이유

그렇다면 이렇게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는데 왜 체포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1. 물리적 증거 부족

위에서 언급된 것은 말그대로 정황증거일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사건 발생 후 두 달이 지나 시신이 발견되어 물리적 증거 확보가 어려웠고 이는 법적으로 유죄를 입증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2.신부의 강력한 영향력

당시 조셉신부는 경찰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동생이 경찰 소장으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수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죠...

또한 가톨릭 교회의 강력한 권위와 신부의 사회적 압박은 수사와 기소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사건 당시 피해자들은 공식 석상에서 이러한 신부의 범죄 정황을 증언하기를 매우 두려워 해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침묵의 대가

볼티모어 대교구는 조셉 매스컬쳐 신부의 성범죄 혐의와 관련하여 피해자들에게 합의금을 지급했습니다.

조셉신부의 범죄 사실이 공식화 된 것은 아니지만 뒤로 들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이 너무 일관성이 있고 신빙성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도의적 책임을 느낀 대교구에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지급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카톨릭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이 사건을 최대한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고 지불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 사건 그 이후

세스닉 수녀 살인 사건은 2017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천사들의 증언"을 통해 다시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아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조셉 매스컬쳐 신부는 2001년에 뇌졸중으로 사망했으며,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습니다. 세스닉 수녀의 죽음은 많은 의문을 남긴 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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