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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히말라야의 국립공원 하리키잔 마도아른 산맥 중턱에 있는 루프 쿤드 호수에서 수백 구에 해당되는 사람 해골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호수는 수심이 최대 3m 정도로 아주 얕은 호수인데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은 걸까요?

가설 1. 전쟁 중 죽은 일본군의 시체

 

발견 시점이 제 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해당 시체는 일본군의 시체가 아니냐는 추측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영국 영이었던 인도로 들어가기 위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다가 추운 날씨에 고립당했고 물자와 식량이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 단체로 아사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군수 물자의 흐름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신빙성은 없는 추측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가설 2.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사망 사건발생

 

유해를 조사하던 법의학자들은 해당 유골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냈는데 바로 무언가에 의해 강하게 충격을 받은 것 같은 흔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이 자연 재해에 의한 상처로 봤고 당시 그곳에 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례적으로 커다랗고 많은 수의 우박을 맞아 죽은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여신의 저주

 

이것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여신의 저주라고 평했습니다.

사건이 있었던 곳의 이름은 난다데비 봉우리였는데 이는 축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인도의 여신 난다데비의 이름으로 부터 지어진 명칭이었습니다.

옛부터 이 지역에서는 난다데비 여신과 관련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 전 우타라칸드 지역 인근을 다스리던 왕은 왕비의 임신 소식에 순산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한 순례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 때 고승은 왕에게 몇가지 당부사항을 전달했습니다.

1. 산은 여신의 영역이기에 신발을 벗은 채 맨발로 올라가야 된다

2. 이는 신성한 곳이기에 폭력과 향락을 취하면 안된다.

폭력과 향락은 군사와 여인을 의미하기도 했기에 혼자가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왕은 이 조언을 무시하고 군사와 여인들을 데리고 산을 올랐습니다.

여신은 이에 분노하여 루프 쿤드 호수를 지나던 왕의 무리에게 큰 우박을 떨어뜨려 전부 몰살시켰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에 학자들도 이 수많은 해골들은 순례자들이 우박을 맞아 변을 당한 것 까지는 동의했습니다. 왜냐하면 5천 미터 고도의 산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번에 오를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 이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인근의 라타 마을 사람들은 12년에 한번씩 난다데비 여신을 기리는 축제를 연다고 합니다.

 

가설들을 깨는 증거가 나타나다.

 

이 가설들의 전제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발견과 사건에는 큰 연대 차이가 없다. 두번째는 해골들의 주인 즉 피해자들은 같은 시기에 사망했다. 그러나 하지만 최근 과학의 발전으로 이 해골들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일부 해골들은 7세기에서 10세기 사이 또 다른 해골들은 17세기에서 20세기 사이로 1,000년 이상의 시간차가 존재하는 유골들 이었습니다. 심지어 인종도 달랐습니다.

7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의 유골은 남아시아인으로 밝혀졌고 나머지는 그리스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기존에 했던 가설들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자들은 1,000년 이상의 간격에 되는 해골들이 동시에 발견된 것도 신기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이 지역을 갔다는 근거를 역사적으로 찾기 힘들었습니다.

도대체 호수에서는 무슨일이 있었기에 이 많은 사람들은 1,000년간의 간극을 두고 호수에서 왜 죽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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