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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코벳의 어린 시절 

1875년 인도에서 태어난 짐 코벳은 어려서부터 사냥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9살 때 부터 엽총으로 표범을 잡으며 열한 명의 형제 자매 중에서도 사냥 실력과 센스가 월등히 높았고 전문적인 사냥꾼들마저 어린 코벳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숲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키운 코벳은 학생의 나이에 접어든 이후 더 이상 무의미한 사냥은 하지 않고 여행을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18세에 학교를 그만둔 뒤 철도에 연료 검사관으로 일을 하다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군에서 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보병 장교까지 진급하게 됩니다.

짐 코벳

공포의 식인 호랑이 참파와트의 등장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07년 인도 정부로 부터 코벳 앞으로 공문이 한 통 도착합니다. 

공문의 내용은 쿠마온 지역 인근에 출몰한 한 마리의 호랑이로 인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정부 측이 사냥꾼을 물색하던 중 코벳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이었습니다.

'참파와트 호랑이'라고 이름 붙은 이 맹수에게 희생당한 사람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그 수가 무려 436 명이었습니다. 정부는 한 마리의 호랑이를 잡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하였지만 참파와트는 이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추적을 피해가며 마을 주민들을 끊임없이 습격했습니다.

이후 정부는 최고의 정예 부대라고 불리는 구르카 용병단까지 파견했지만 이 마저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이 지역의 모든 호랑이와 짐승들을 죽이고 정작 문제의 식인 호랑이는 잡지 못한체 피해가 계속 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참파와트 호랑이

원래 다시는 동물을 사냥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그였지만 이 호랑이 때문에 사람과 동물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직접 호랑이를 사냥하기로 결심합니다. 

 

사냥 시작

코벳은 사냥을 시작하기 전 정부에게 한 가지 사항을 요청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부가 이 호랑이에게 걸린 어마어마한 현상금들을 모두 취소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막대한 현상금은 어리숙한 사냥꾼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에 되려 호랑이에게 사냥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추적을 하는데 있어서도 방해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곧바로 요청을 수락하였습니다.

조사를 시작한 코벳은 발자국과 특징들로 해당 맹수가 8피트 정도(2m 40cm 정도) 크기의 뱅골 호랑이라는 것과 암컷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큰 크기가 아닌 이 호랑이는 피지컬이 아닌 지능적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사냥했다는 뜻이었고 전설의 사냥꾼인 코벳 역시 추적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흔적의 실마리가 보일 것 같으면 사라져 버리고 닿을 것 같다가도 어느새 멀어져 버렸습니다. 이유를 고심하던 코벳은 참파와트가 쇠 냄새에 유독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참파와트는 쇠 냄새를 맡기만 하면 해당 산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고 다른 곳에 다시 나타나 주민들을 습격하는 행태를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참파와트의 약점과 묘수

코벳은 참파와트의 이 사냥 습성을 이용한 하나의 묘수를 떠올립니다.

마을 사람들을 대거 동원하여 농기구를 들고 산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럼 쇠 냄새를 맡은 호랑이는 그것을 피해 산 아래로 내려올 것이고 이때 코벳이 호랑이를 저격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작전은 실행되었고 코벳의 예상대로 아직 인근 산에 머물고 있던 참파 아트는 산 아래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코벳은 덤불 속에서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내려온 참파와트는 그대로 코벳의 총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것이 코벳의 첫 식인 맹수 사냥이었습니다.

 

이는 짐 코벳의 수많은 사냥 중 제일 유명한 일화이며 사람을 가장 많이 잡아먹은 동물 1위로 기네스에 랭크되어 있기도 합니다

 

참파와트를 뛰어넘는 숙적과의 조우 

가장 유명한 스토리는 참파와트 호랑이 이지만 코벳이 진정으로 숙적으로 느꼈던 맹수는 달랐습니다. 

바로 수컷 뱅골 호랑이였던 독신자였습니다. 독신자의 별명은 그가 10년동안 짝이 없이 사람들을 사냥해서 그런 별명이 지어졌는데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1920년 1930년까지 1년 동안 활동하며 200 이상의 사람을 포식하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독신자가 주로 활동하던 일대의 숲을 모조리 벌목해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터전을 잃은 호랑이는 살던 곳을 떠나 새 보금자리에 정착하였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짐 코벳이 살던 집 근처의 숲이었습니다. 

 

1930년 겨울 산책을 하던 코벳은 이제껏 자신이 본 어떠한 호랑이보다 큰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합니다. 

발자국으로 추측되는 호랑이의 크기는 무려 3미터가 넘었습니다. 코벳은 곧바로 총을 꺼내들고 경계태세를 취했으나 근거리에서 거대한 호랑이를 마주치기에는 부담이 있어 서둘러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코벳은 집 근처 호수로 나가 흡연을 하던 중 독신자와 처음 마주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코벳은 "호랑이는 덤불 속에서 느리게 걸어 나오더니 나에게 두 눈을 고정시킨 채 호수에서 목을 축이고 돌아갔다. 그것은 내가 살면서 본 어떠한 광경보다도 공정하고 아름다웠다. " 라고 합니다.

 

 참파와트 호랑이가 늙고 병든 영악한 호랑이였다면 파월과 호랑이는 지능과 더불어 크기마저 거대한 말 그대로 괴수였습니다. 코벳은 이 악명높은 호랑이를 꼭 잡을 것을 다시 다짐하고는 호랑이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독신자 사냥 

추적 중 코벳은 독신자의 울음소리로 추측되는 포효를 듣게 됩니다. 그는 소리에 민감한 호랑이를 유인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 호랑이 울음소리를 흉내내 유인에 성공하게 되는데 코벳의 계산에는 그가 30초쯤 후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 자세를 잡은 뒤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독신자는 코벳이 숫자를 8까지 세웠을 때 이미 10미터 앞의 덤불까지 접근하여 거대한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코벳은 숨을 죽이고 천천히 총구를 돌려 독신자의 머리를 겨냥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독신자의 위험에 기가 눌려버린 코벳은 명포수답지 않은 실수를 해버렸고 조준하던 머리의 정 중앙이 아닌 오른쪽 눈 아래를 맞춥니다.

그리고 총이 맞은 독신자는 숲이 떠나가라 포요하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위 10m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나무를 찢어버리는 독신자의 분노에 완전히 공포에 질려버린 코벳은 그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가만히 엎드린 상태로 독신자가 난동을 멈출 때까지 30분을 숨죽인 채 공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총을 장전하는 소리마저 낼 수 없어 한 자세로 가만히 들고 있느라 팔에 경련까지 일어났습니다.

독신자가 몸부림을 멈추자 코벳은 엎드린 상태로 천천히 뒤로 빠졌고 거리를 충분히 벌린 뒤에 일어나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독신자가 코벳을 추격하지 않은 덕에 그는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준비를 마친 후 다시 숲으로 향했습니다.

 코벳은 큰 상처를 입은 독신자가 멀리 이동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였고 근처 개울에 잠복합니다. 사냥을 할 여력이 되지 않으면 목이라도 추기러 올 것이라고 추측한 것인데 얼마가지 않아 호랑이 한마리가 피를 흘리며 다가왔습니다.

코벳이 독신자를 발견했을 때 거대한 수컷 호랑이는 이미 뛰어들 자세를 취하고 코벳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코벳은 저번처럼 자칫 망설이기라도 하면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10년 넘게 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파월가의 독신자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파월가의 독신자를 사냥 성공한 코벳

 

전설의 마침표

 이 후로도 식인 맹수 사냥을 이어가던 코벳은 동물들의 살 곳이나 먹을거리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러한 사태가 끊임없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인도 정부 측에 요청하여 야생 동물들이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국립공원 건립을 제안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동물 보호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기 전이었으며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국립공원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식인 맹수들을 사냥하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던 그의 인도 정부 측도 코벳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수락하여 공원은 그의 이름을 따 코벳 공원이 되었습니다. 

 

 짐 코벳은 63세 때 사냥한 식인 호랑이를 마지막으로 일생을 바친 포수직을 은퇴합니다.

그 후 케냐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자신의 여섯 번째 자서전 지필을 마치고 1955년 4월 19일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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