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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3월,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서 글리코의 사장인 에자키 글리코가 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에게 납치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글리코라는 대기업 사장의 납치 사건으로 인해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사건의 구성 

1. 납치 사건의 발생

우선 범인들은, 에자키 글리코의 집에 침입해 그의 아내와 딸을 묶어두고, 욕실에서 목욕 중이던 에자키 글리코를 납치했습니다. 아내는 괴한들이 떠난 후 간신히 줄을 풀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2. 범인들의 몸값 요구 

납치 후, 범인들은 글리코 본사로 전화를 걸어 현금 10억 엔과 금괴 100kg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글리코 측은 경찰에 협조하여 범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협박범들의 통화와 요구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세웠습니다.

 

3. 에자키 글리코의 탈출

납치된 지 약 3일 후인 3월 21일, 에자키 글리코는 오사카부 세치시에 위치한 한 오두막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범인들이 감시를 소홀히 한 틈을 타 에자키 글리코는 스스로 탈출하여 근처의 역으로 도망쳤습니다. 역에서 그는 일본 국유철도 직원에게 발견되어 경찰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협박과 방화, 이어지는 위협

납치 사건 이후, 글리코 본사에 협박장이 도착했습니다. 범인들은 현금 6천만 엔을 요구하며, 지정된 장소에서 경찰의 잠복 작전을 피해 도주했습니다. 그 후, 글리코 본사와 영양식품 창고에 방화 사건이 발생하며, 사회적 불안이 극도로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한 납치나 협박 이상의 조직적 범죄임을 시사했습니다.

 

협박의 확대

범인들의 협박은 글리코 본사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루다이 식품, 하우스 식품 등 여러 대기업이 연달아 협박을 받으며, 일본 식품 산업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범인들은 청산가리를 제품에 넣었다는 협박장을 보내며 소비자들의 공포를 조장했고, 실제로 오사카와 교토의 슈퍼마켓에서 독극물이 든 제품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범인들의 목적은 도대체 뭐야?

범인들의 목적이 명확하게 돈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협박장과 요구 사항들이 단순히 금전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추측 범인의 몽타

예를 들어, 10억 엔과 금괴 100kg을 요구한 것은 현실적으로 이동과 도주가 어려운 금액과 무게였습니다. 또한, 범인들은 여러 차례 협박과 방화를 통해 기업을 위협했지만, 실제로 큰 금액을 손에 넣지 못했습니다. 이는 범인들의 목적이 돈보다는 기업과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경찰은 도대체 뭘하나??

경찰들이 이렇게 큰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범인들의 치밀함

범인들은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습니다. 여러 차례 장소를 변경하며 경찰을 따돌렸고, 녹음된 목소리와 가짜 지시문 등을 사용해 경찰의 수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2. 경찰의 실수와 자원 부족

경찰은 몇 차례 범인을 체포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목격된 용의자를 체포하지 못한 이유는 상부의 지시 부족과 현장에서의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여러 차례 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는 과정에서 자원과 인력이 부족해졌습니다.

 

3. 사회적 압박과 혼란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사회적 불안과 압박이 높아졌습니다. 경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지만, 범인들은 이를 이용해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경찰을 따돌렸습니다.

 

결과적으로,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은 일본 경찰 역사상 가장 큰 미해결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범인들의 정체와 목적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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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것인가요?

돈 ? 사랑? 명예? 그 어떤것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 1순위 놓는 것은 아마 가족일 것입니다.

근데 오늘은 이 소중한 것을 자신의 손으로 지워버린 끔찍한 사건에 대해 알려드릴려고 해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존

존은 아내와 자식 3명(딸1, 아들2)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791년 9월 11일 존은 자신의 손으로 모든 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했습니다. 

 

우선 아내는 헬렌을 총으로 쏘고, 자신의 어머니 또한 짧게 입을 맞춘 후 뒤통수에 총을 쐈습니다. 

이 와중에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어 돌아온 첫째 딸을 또 총을 쏴 죽인 후 13살인 막내 아들 또한 총을 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존은 즉결 처형과도 같은 스타일의 살인 방식을 택했죠. 존은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르길 바랐거든요.

 

하지만 마지막 남은 둘째 아들 존 주니어는 눈치가 빨랐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상태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총알에 맞았고 즉사하지 않았죠.


결국 존은 둘째 아들 심장에 계속해서 총을 쐈습니다. 추후 부검 결과 둘째 아들은 몸에서 10발의 총자국이 발견되었죠.

그렇게 가족 모두를 살해한 조는 가족들의 시신을 저택에 큰 연회장에 눕혀 놓았습니다. 그리고 각 시신마다 쪽지를 남겨 자신이 왜 그들을 죽였는지 이유를 써놓았죠. 어머니의 시신은 너무 무거워서 연회장이 아닌 다락방에 그대로 남겨두었는데 이런 사소한 것까지도 적어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존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 5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편지에는 자신은 세상에서 너무 많은 악을 보았으며, 가족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죽였다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왜 이런 짓을 벌였을까?

1. 강압적인 어머니

존 에밀리스트는 1925년 9월 17일 미국 미시건주 베이시 독일계 미국인 부모 사이의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존의 어머니는 매우 강압적이면서도 과잉보호가 심했습니다.

어머니가 허락해 주지 않으면 존은 집 근처를 벗어날 수 조차 없었죠.

그러다 보니 존은 자연스레 또래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고, 친구 한 명 없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2. 아내의 편집증

존의 아내는 알코올 중독과 매독이라는 성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매독이란 것이 주사 한 방에 낫는 병이지만 당시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이것이 존에게서 옮은것이 아닌 첫째 남편에게 옮아 존과 결혼한 것이였죠. 그것도 몰래..

 

 병세가 깊어질수록 그녀는 술을 더 많이 마시기 시작했고,이 모든 것은 존의 아내를 신경질적인 편집증 환자로 만들었죠. 아내는 공개적으로 존의 성적 능력을 자신의 전 남편의 성적 능력과 비교하며 존에게  수치심을 주기도 했습니다.

 

3. 경제적 어려움

1971년 저지시티 은행이 폐쇄되면서 존은 갑작스레 직장을 잃게 됩니다. 뭐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이야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만한 일이죠. 하지만 존 리스트는 벌려놓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정기적인 급여가 사라지자 순식간에 생활비와 주택 유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재정난을 겪게 되죠. 구력감과 불안감에 휩싸인 존은 이 상황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여전히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옷을 차려 입고 출근 시간에 집을 나서죠.

 

낮 동안 주로 여러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거나 보험 판매를 하거나 기차역에서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신문을 읽곤 했습니다. 하지만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집 재정 상태는 더욱 나빠져만 갔습니다.

 

4. 삐뚤어진 신앙심

존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루터 교에 신앙심이 깊었는데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자신이 기도하면 그 죄가 사해지고,

가족 또한 천국에서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교도소에서도 자신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사라진 살인자 존

 원인이야 그렇다 치고, 살인을 저지른 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러한 극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존은 20년동안 잘살았다고 합니다. 

 

편지에다 많은 증거를 남겼기에 존이 범죄자인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증거에도 마치 흔적도 없이 존은 사라졌을까요?? 

존은 살인 후 기차를 타고 뉴저지에서 미시간까지 그다음에는 콜로라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1972년 초 덴버에 정착하여 자신의 대학 동창의 이름 로버트 피터바 크로 라는 가명을 사용해 새 삶을 시작하죠.

로버트가 된 존은 이전의 삶을 거의 완벽히 재건해 냈습니다. 1979년부터 1986년까지 덴버 외곽의 종이상자 제조업체 감 시간으로 일했고, 지역의 루터교 교회에 가입하였으며, 차량이 없는 교회 회원들을 위해 카프를 운영하기도 했죠. 또 종교 모임에서 들로레스 밀러라는 여성을 만나 1985년에 결혼도 했습니다. 체포 1년 전인 1988년 2월에는 아내와 함께 버지니아 주 의사였고, 계속 로버트 피터바 클라크로 살아가며 회계사 일 역시 제개했죠. 겉에서 보았을 때 누가 봐도 독실하고 성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평판도 좋았죠.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경찰들은 여전히 20년 전 가족을 죽인 냉혈한 존 에밀리스트를 찾고 있었고, "America's Most Wanted" 통해 몽타주를 공개한 순간 이웃이 신고를 하면서 경찰에 잡혀간 것이죠.

훗날 존 리스트는 투티 투엔티라는 미국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 생각을 밝혔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그들은 나를 용서했거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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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24일 일본 홋카이도 관할 경찰은 이 지역에서 등산을 하다가 실종되었다는 신고를 접수받아 헬기를 타고 산을 수색했습니다. 그런데 등산로에서부터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SOS 구조신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신호를 조난한 사람이 남겼을 거라 생각한 경찰은 표식 주변을 살폈는데 sos표식이 있는 곳에서 23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조난된 사람을 발견하고 사건은 마무리 되는 듯 보였습니다.

 

 다른 실종자가 있다?

 조난자를 발견하고 경찰은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구조된 사람에게 조사를 진행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SOS 표식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에 경찰은 구조 신호를 남긴 또 다른 실종자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바로 다음 날부터 수색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런데 경찰은 표식이 있던 위치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동물에게 훼손된 한구의 유골과 남자의 목소리로 도와달라는 내용의 테이프가 담긴 회색 가방을 그 옆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 테이프에는

당시 발견된 유품

" SOS !! 도와달라!! 지금 절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라는 말이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가방이 발견된 장소는 벼랑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당시 산을 올랐던 사람들의 명부와 실종자 목록, 그리고 가방의 물품을 조사한 결과, 이 유골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1984년 7월에 실종된 아이치현에 거주하고 있던 한 남성 회사원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렇게 추정을 하고 유골 감식이 진행되었는데 사망자의 유골 조사 결과 키 160cm에 25세에서 35세 정도의 여성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실종자가 있다!!?

 그렇게 경찰은 또 다른 실종자가 있을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SOS 신호를 만들었던 나무는 한 획당 5m 정도의 나무가 사용되었고 무엇보다 녹음 테이프에 녹음된 목소리는 남성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유골의 주인인 여성과 관계된 사람일 것으로 추정하여 조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 이 여성에게는 같은 회사에서 사귀던 남자 회사원 A 씨가 있었고 둘은 함께 등산길에 올랐다가 함께 실종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때문에 테이프에 녹음된 남자의 목소리는 A씨의 목소리로 추정되었고 경찰은 처음 유골이 발견된 곳 근처에서  A씨의 유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찰은 A 씨와 여성 B 씨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조난을 당했고 SOS표시까지 만들었지만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 또 다른 실종자가 있다!!!??

그런데 사망자의 유류품을 가족들에게 전달했는데 그의 가족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카세트에 녹음되었던 목소리가 자신의 아들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경찰은 추가적인 감식을 진행했는데 실제로 카세트가 발견되었던 가방의 DNA와 유골의 DNA는 일치하지 않았습ㄴ다.

 경찰은 결국 이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야 했기에 다시 또 그 지역으로 찾아가 수색을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끝내 제3의 인물의 유골이나 흔적은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처음엔 이 인물이 두 커플과 치정 관계에 얽혀 있었고

산에 올랐다가 어떤 한 사건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조사 결과 이 남성이 실종된 것은 1983년으로 커플이 실종되기 1년 전 먼저 실종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 SOS표식은 두 커플이 입산해 사망하기 1년 전 1983년에 실종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고 1년 뒤 커플이 우연히 이 표지 근처에서 조난을 당해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 후 5년 뒤 이 주변에서 실종된 사람이 발견된 참 미스터리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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