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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동물 짐조(짐새)

 고대 중국에 서식하였다고 알려진 맹독을 가진 새가 있었는데 그 새는 짐새(짐조)라고 불렸습니다.

짐조의 짐(鴆)은 짐새 짐이라는 고유한 한자어입니다. 짐조의 생김새는 백록 혹은 왜가리와 유사하고 몸집은 독수리보다 약간 큰데, 목과 부리, 다리가 특히 길다고 합니다. 발톱은 세개로 부리는 밝은 구리빛에, 깃털은 검은 빛이 감도는 보라색이나, 자록색을 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눈알은 붉은색이며 머리에는 수리처럼 깃털 볏이 있다고 합니다.

짐조로 추정되는 그림

이는 환상에 동물로 여길 수 있지만 짐조에 대한 중국의 기록은 공문서에 기록된 것만 수십 개에 달하며 민간 기록까지 합치면 그 수는 수백이 넘어갑니다. 

 

짐조의 무시무시한 독 

짐조의 먹이는 살모사인데 온 몸이 독으로 가득 차 있어  그 새의 깃으로로 담근 음식을 먹으면 곧 사람이 죽는다라는 고서가 있습니다. ( 곽의공의 광지의 내용 )  또한 짐조는 강한 독이 있어서 둥지 근처에 풀 한 폭이 자라지 않으며 그 새의 분뇨나 깃이 스친 음식을 먹으면 죽기에 사람들은 새를 불길하게 여겨 멀리했다고 전해집니다.

중국 고서에 표현된 짐조

 또한 짐조의 독은 깃털, 불리, 내장, 피, 무엇에서도 추출이 가능했으며, 섭취하는 즉시 사람을 절명에 이르게 한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독이 얼마나 강력한지 짐조가 날아오르기만 해도 그 아래 있던 들짐승들이 고꾸라지고 사람은 정신을 잃을 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짐조의 독은 물과 같은 액체에 잘 녹아 들었으며, 무색, 무미, 무취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소리 소문 없이 암살을 하는데 유용했다고 합니다. 특히 희대의 악녀라고 불리는 여태후가 굉장히 애용했던 암살 무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짐조는 실존했던 동물일까? 

이러한 실질적인 기록들이 있음에도 짐조는 아주 오랜 시간 상상 속의 동물로 불렸습니다. 왜냐하면 짐조의 기록이 대부분 기원전의 것들이며 시간이 지날 수록 짐조에 대한 기록이 급격히 줄어나가, 서기 6세기쯤부터는 중국 내에서도 전설의 동물 취급 받았습니다.

 그런데 2004년, 영국의 저명한 과학 저널인 Nature 지에 놀라운 내용이 발표됩니다. 여기서 짐조가 가진 특징을 가진 독조가 있었습니다. 중국 기록에 적힌 짐조처럼 독이 들어 있는 생물을 섭취하는 독조인 '피토휘'가 발견되었습니다.

피토휘

 뉴기니에 서식하는 피토휘는 독이 있는 딱정벌레를 주식으로 삼으며 몸속에 독을 축적하였으며, 그렇게 쌓인 독은 사람의 혈관에 주입할 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짐조와 비슷한 독조가 발견되자 짐조가 상상의 동물 아닐 수 있기에 학자들은 짐조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짐조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 

기록 중에는 '법을 어기고 짐조의 새끼를 사육하려 한 남성을 처형하고, 새끼는 도성 거리 한복판에서 불태워 죽였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은 짐조라고 불렸던 명확한 실체를 가진 동물이 존재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또한 송나라 남송 시대의 기록 중에는 '짐새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황제가 새가 산다는 산을 통째로 불태웠다'는 기록도 존재했으며, 진나라 시대 때 있었던 실제 법령 중에는 '짐조를 장강 이북으로 반입하거나 키워서는 안 된다'라는 금지령이 실제 했다는 것도 밝혀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은 남북조 시대를 마지막으로 일관성이 없어지고 급격히 줄기 시작합니다. 이에 학자들은 짐조는 고대 중국에 실존했던 동물이나 이 시기쯤 하며 멸종을 막게 된 것이라고 유추합니다.

 

짐조의 멸종 이유 

1. 전쟁 중 사라진 짐조의 서식지

 짐조의 주 서식지는 중국 남부의 광둥성이였습니다.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원시림이였는데 남북조 시대 때 한족들이 남하하는 과정에 정글을 없앴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동물들이 서식지를 잃었고 그 중 하나가 짐조였다는 추측입니다.

 

2. 인위적인 사냥

 역사적인 기록에서 표현되었듯 짐조의 독은 왕들의 암살도구였습니다. 이를 두려워 한 왕들이 짐조를 보이는 족족 사냥하기 시작했고 서민들 또한 독을 가진 짐조를 불길하게 여겼기에 사냥을 도왔습니다. 애초에 짐조는 고산 지대에서만 사는 희귀종이어서 개체 수가 많이 없어 그 수가 줄기 시작하자 아주 빠른 시기에 완전한 멸종이 이루어 졌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정말 짐조라는 강력한 독을 지닌 새가 중국 고대에 실존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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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택사이트

프로토택사이트란 오르도비스기 중세시대부터 데본기 후세까지 생존했던 거대 육상 균류입니다. 

당시에도 최대 규모의 유기체였으며 너비는 1m, 높이는 최대 8m 까지 자랐던 판타지에 나올만한 사이즈의 초거대 균류엿습니다. 

거대해진 이유 1 - 천적의 부재

프로토택사이트가 거대해진 이유에는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3억 6천만년 전 데본기 육지에서는 작은 절지 동물들만 살았고 당시 척추동물들도 있었지만 진화가 덜 된채 이제 막 육지에 진출하던 시기였기에 천적이 없었습니다. 

즉 이 생물을 갉아 먹을 만한 동물들이 없어 크게 자랄 수 있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이 작은 곤충들이야말로 프로토택사이트가 멸종한 이유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균류가 이렇게 크게 자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곤충들이 점차 번성하면서 프로토택사이트가 다 자리기 전에 이를 갉아먹어 번식을 제대로 못하고 멸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대해진 이유 2 - 진화론적 추측 

프로토택사이트는 다른 곰팡이류들과 같이 포자를 날려 번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좀 더 유리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바로 키입니다. 즉 키가 크면 클수록 포자를 좀 더 멀리보낼 수 있기에 

이를 위해 키가 크도록 진화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프로토택사이트를 둔 과학자들의 논쟁

프로토택사이트는 1843년 지질학자인 에드몬드 로건이 캐나다 북동부 데본기 지층에서 화석으로 발견되면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화석이 침엽수 같은 주목과(Taxus)의 나무가 죽어서 곰팡이로 뒤덮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프로토"택사이트"(Prototaxites)로 명명합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프로토택사이트를 거대한 나무의 한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후 식물학자인 윌리엄 카루더스는 화석의 조직을 연구한 결과 내부의 조직이 나무와는 너무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게다가 프로토택사이트의 생존시기라고 추정되는 데본기 초기에는 큰 키의 나무는 존재하지 않았고 줄기가 없는 이끼류나  키가 작은 나무들만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로토택사이트가 거대한 해조류 정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100여년이 지난 2001년 스미소니언 국립자연박물관의 고생물학자였던 프란시스 휴버가 프로토택사이트의 화석에서  곰팡이나 버섯 같은 균류에서만 관찰되는 균사(hyphae)를 발견했고 이를 근거로 균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도 많은 과학자들이 논쟁을 펼쳤지만 2007년 스탠포드 대학의 고식물학자 케빈 보이스는 탄소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균류라는 휴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식물은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같은 시기 비슷한 환경에 살았던 같은 종의 식물이라면 탄소-13과 탄소-12의 비율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광합성을 하지않는 균류나 동물은 어떤것을 먹었느냐에 따라 이 비율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그래서 당시의 식물의 탄소 동위원소 분석을 한 결과 그 비율이 비슷했으나 프로토택사이트는 같은 종이라도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증거로 프로토택사이트는 확실히 식물은 아니다 라는 사실을 도출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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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로돈의 SPEC

메갈로돈은 2300만년 전~360만년 전 생존한 초 대형 상어로, 오토두스속에 속합니다.

인간과 메갈로돈의 크기 비교

'역사상 최대 크기의 육식상어'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메갈로돈의 길이는 최대 약 20m 이며 몸무게는 최대 103 ton 정도로 추정됩니다.  

 메갈로돈의 입은 150cm 정도로 사람을 통째로 삼킬 수 있으며 입 안에는 사람 5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빨하나 크기만 해도 18cm 정도가 되며 치악력은 최대 180,000N 으로 이는 1톤 트럭 18대가 짓누르는 수준입니다. 

 

이 강력한 치악력과 거대한 크기로 중대형 고래들은 한입에 사냥가능하며 이들의 화석이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등 전세계에 걸쳐서 발견된 점을 보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신생대 최강 포식자 였습니다. 

 

최강 포식자의 멸종 원인

그럼 도대체 이렇게 강력한 생물이 어떻게 멸종이 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많은 가설이 있습니다.

 

1.첫번째 가설 : 빙하기 

메갈로돈은 지구의 빙하기가 시작된 시점인 260만 년 전쯤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당시 지구는 표면의 30%가 빙하로 덮여버렸고 바다의 수온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고생물학자는 이런 지질학적 사실들을 앞세워 메갈로돈이 낮아진 수온을 견디지 못하고 서식지가 축소되면서 멸종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수온이 차가웠던 해역에서 메갈로돈의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메갈로돈의 주 먹잇감이었던 고래들이 두터운 지방층을 앞세워 온도가 낮은 극지로 이동했습니다.

그 결과 메갈로돈은 먹이 부족으로 멸종했다는 주장은 상당이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가설을 반박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수온이 차가웠던 지역에서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고 메갈로돈의 거대한 덩치 덕분에 체표면적이 작아 저절로 체온이 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 백상어가 속한 "악상어" 계통들은 온열 동물이라 수온이 낮은 지역에서도 잘 살아갑니다.

 

2. 두번째 가설 : 먹이 부족

메갈로돈의 천적은 없었지만 그 큰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1,000kg이 넘는 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마이오세 중반에는 메갈로돈과 비슷한 크기의 거대 향유고래 리비아탄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합니다. 

리비아탄

 지금의 향유고래들은 주로 중소형 물고기나 문어 오징어들을 먹었지만 리비아탄은 강력한 이빨로 메갈로돈의 주요 식량인 중대형 고래들을 물어 뜯어서 사냥했습니다. 

 또한 이 비슷한 시기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중대형 고래의 개체 수 감소가 발생합니다. 당시 60종이 넘는 고래가 무려 절반 가까이 줄어버리고 고래 뿐만 아니라 해양 포유류의 55% 바다 조류의 35% 상어의 9% 바다 거북의 43%가 사라지는 등 당시 대형 해양 동물 종의 36%가 멸종했다고 합니다. 즉 바다 전반에 절대적인 생물량이 부족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악조건들 때문에 메갈로돈은 점차 멸종의 길을 걷게 됩니다.

 

생태계의 변화 

 메갈로돈이 사라지고 바다의 패권이 백상아리와 범고래 류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든 생물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8에서 9미터나 되는 중대형 고래들을 잡아먹기엔 체구가 너무 작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당시 10m쯤 됐던 고래들은 자신을 위협하는 포식자가 없어 몸집이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일부 고생물학자들은 현재 백상아리가 플라이오세의 조상들보다 1m 정도 더 크다는 점과 천적이 없다는 점으로 보아 수백만 년 후에는 지금의 백상아리들이 거대한 고래들을 잡아먹기 위해 과거의 메갈로돈처럼 거대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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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캔스란?

 

실러캔스(Coelacanth) 란 고생대 데본기에서 중생대 백악기까지의 바다에 생존했던 물고기다. 이 종의 화석은 4억년 전 지층에서 많이 나오다가 차츰 줄어들면서 7000만년 전 생성된 지층에서부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종은 그 시기쯤 멸종된 것으로 알았다.

 

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 발견 !!

그러나 193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찰룸나강 하구의 5km 앞바다에서 기묘하게 생긴 물고기가 발견되었다.  
 이 물고기는 어류학자인 J.L.B 스미스에게 보내졌는데 스미스는 이 물고기가 실러캔스의 신속 신종 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름을 라티메리아 찰룸나라는 학명을 붙여 1939년 3월 18일자의 '네이처' 지에 발표했다. 
이 실러캔스 종은 다른 물고기와 달리 콧구멍이 입 안으로 뚫려 있어 공기를 들어마실 수 있다. 또 땅 위를 기어다닐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스미스는 이 들의 조상(유스테노프테론) 중 일부는 땅 위로 올라와 양서류가 되었고 적응하지 못한 종은 바로 이 실러캔스가 된 것이라 생각했다. 
 이 후 실러캔스는 지금까지 28속, 70종 정도가 추가로 발견되었고, 양서류와 어류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이 종은 고생물학계에 엄청난 흥분을 일으켰고, 20세기 크나큰 수확 중 하나다. 

 


 실러캔스랑 같은 시간을 보냈던  많은 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숨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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