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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 발견된 커다란 돌 구슬

코스타리카 숲 속에서 발견된 돌덩어리

1930 년대 초 코스타리카의 정글 바나나 농장을 개관하기 위해 작업하던 인부들은 땅 속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커다랗고 둥근 돌들이었습니다.

작은 것은 지름이 10센티미터 내외였지만 큰 것들은 2미터를 넘기는 것도 있었습니다.  2미터에 달하는 돌들은 무게도 엄청나 건장한 성인 남성 여럿이 달라붙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돌의 관한 사람들의 인식 

 

 이후 돌은 라스 볼라스라고 불리며 마을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었습니다. 몇몇 이들은 이것의 표면이 너무 매끄럽고 완벽한 구체에 가까워서 신이 조각한 예술품 같다며 신의 구슬이라고 신성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 중에는 이 안에 보물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돌이 황금도시 엘도라도에 숨겨진 유산이다 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며 다이너마이트와 망치 등을 이용해 석구를 파괴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 안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고 생각보다 대단할 게 없다고 느낀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바나나 농장 근처에 그대로 방치하게 됩니다.

 

돌에 관한 연구 

 

 1940 년 평소 고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도리스 제무라 스톤은 이 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돌의 역사를 밝히면 이 돌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생각하여 돌의 연대를 측정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돌이 언제 만들어 졌는지는 기술로 파악이 가능하지만 이것은 조각품이기에 언제 조각 되어 이런 완벽한 구체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해당 시기의 문화와 유물에 대해 조사하면 자연스레 돌의 기원과 비밀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겨 돌이 발견된 지역에 존재했던 옛 문명을 탐색했습니다.

 

디키즈 문명의 산물? 

연구 결과 700년부터 1530년까지 번영한 디키즈 문명이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게 됩니다.

디키즈 문명은 뛰어난 세공 기술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높은 세공 기술을 가졌다는 근거만으로는 석구가 디키즈 문명의 잔재라고 확정 짓기에 무리가 있었습니다.

 추가적으로 디키즈 문명 속 이 돌에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관련 기록을 찾아보려했지만 수많은 전쟁과 침략으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추가적인 연구는 불가능했습니다. 

 

고대의 유물??

그런데 추가로 발굴 작업을 하던 중 신의 구슬 라스 볼라스는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오래 전에 고대 문명 잔재일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바로 돌무더기 틈 사이에서 도자기 파편이 등장하였는데 연대 측정 결과 이 도자기 파편은 기원전 2세기 경에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기존에 제시된 디키즈 문명보다 족히 1000년은 앞서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기원전 2세기에 최대 15톤에 달하는 거대 화강암 덩어리를 어떻게 완벽한 구의 형태로 조각하였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수많은 가설과 주장을 제시했지만 무엇하나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놀라운 가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라스 볼라스는 밤하늘의 별과 행성을 나타낸 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것이 바로 하나의 천문도 였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돌의 위치를 표시하자 일정한 규칙성이 발견되었는데 이 배치는 당시 별자리나 행성의 위치와 상당한 유사점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 태양과 달의 움직임 별자리의 모습을 돌의 배치로 나타내고 지구가 돌며 이들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돌들을 돌려서 천문도 역시 변경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몇몇 신비주의자들은 돌의 크기가 제각각인 것은 실제 태양계의 행성들을 형성한 것이며 태양을 제일 크게 나머지 행성들은 그에 좀 더 작게 만들었다 라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기원전에 행성을 관측했다는 것은 기존 과학 상식을 모두 뒤엎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고대인들은 이미 우주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면 이 정도의 거석을 조각하는 것은 별것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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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캔스란?

 

실러캔스(Coelacanth) 란 고생대 데본기에서 중생대 백악기까지의 바다에 생존했던 물고기다. 이 종의 화석은 4억년 전 지층에서 많이 나오다가 차츰 줄어들면서 7000만년 전 생성된 지층에서부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종은 그 시기쯤 멸종된 것으로 알았다.

 

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 발견 !!

그러나 193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찰룸나강 하구의 5km 앞바다에서 기묘하게 생긴 물고기가 발견되었다.  
 이 물고기는 어류학자인 J.L.B 스미스에게 보내졌는데 스미스는 이 물고기가 실러캔스의 신속 신종 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름을 라티메리아 찰룸나라는 학명을 붙여 1939년 3월 18일자의 '네이처' 지에 발표했다. 
이 실러캔스 종은 다른 물고기와 달리 콧구멍이 입 안으로 뚫려 있어 공기를 들어마실 수 있다. 또 땅 위를 기어다닐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스미스는 이 들의 조상(유스테노프테론) 중 일부는 땅 위로 올라와 양서류가 되었고 적응하지 못한 종은 바로 이 실러캔스가 된 것이라 생각했다. 
 이 후 실러캔스는 지금까지 28속, 70종 정도가 추가로 발견되었고, 양서류와 어류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이 종은 고생물학계에 엄청난 흥분을 일으켰고, 20세기 크나큰 수확 중 하나다. 

 


 실러캔스랑 같은 시간을 보냈던  많은 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숨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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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잘린 닭  


1945년 9월 10일 콜로라도 주 프루이타에 살던 로이드 올슨은 장모님 대접을 위하여 생후 5개월이 지난 닭을 잡으려고 했다.
장모의 최애부위가 목이라 올슨은 최대한 목 부분을 남기려고 했다. 그런데 신경써서 자르려고 한 탓일까 목을 제대로 절단하지 못했다. 그 순간 머리가 잘린 채 다른 닭들과 섞여 도망 갔다. 올슨은 당연히 이 닭이 곧 죽을거라 생각했지만 멀쩡했다. 심지어 머리가 잘린 사실을 모르는 듯 부리로 날개를 다듬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올슨은 머리가 잘린 닭을 보고 죄의식을 느껴 이 닭을 죽이지 않고 보살펴 주기로 했다. 목이 잘린 부분에 스포이트를 이용하여 물과 우유, 곡식을 넣어주고 가끔 몸안의 점액을 주사기로 뽑아줘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보살핌아래 1.5kg에서 죽기 직전 3.6kg 까지 자랐다.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이 닭이 살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머리는 잘렸지만 한쪽 귀와 뇌간(brain stem)의 대부분은 멀쩡했기 때문이다. 뇌간이란 척추신경과 대뇌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조류의 뇌간은 신경감각을 통합하는데 매우 중요하고, 호흡, 장기들의 움직임, 반사신경 등 생존에 필수 부분을 담당하는데 이 부분이 그대로라 살아있었다고 본다. 

 


스타가 된 닭과 올슨


수탉이 머리가 없이 한달을 살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호프웨이드'라는 흥행사에서 순회공연으로 돈을 벌자고 제안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동물 서커스가 유행하고 있어 머리 없는 닭은 크나큰 흥행 소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에 올슨은 그들의 제안을 수락하고 이때 닭에게 마이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올슨은 한 사람당 25센트라는 돈을 받고 구경을 시켰는데 한달에 4,500달러(한화 약 570만원)까지 벌었다고 한다. 
마이크의 죽음
1947년 3월 공연을 끝내고 집으로 오던 중 마이크의 기도가 점액질로 막혀 숨을 쉬지 못했다. 올슨은 주사기로 빼주려고 했지만 주사기를 서커스 장소에 깜빡 놓고 와 결국 마이크는 죽고 말았다. 이 시기가 마이크가 머리가 잘린 18개월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 일이 있고 올슨은 마이크를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 거지말때문에 1949년 까지 마이크가 공연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포스트 마이크?


마이크와 올슨 이야기를 접한 일부 쓰레기같은 인간들이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벌기 위해 닭의 머리를 잘라보았다. 그러나 11일 정도 살아남은 닭은 있지만 모두 죽었다. 태국에서도 일주일 정도 살아서 화제가 된 닭이 있었지만 마이크급은 없었다. 


마이크는 오늘날까지 프루이타에서 명물로 취급된다. 1999년 부터는 '머리 없는 닭 마이크의 날' 이라는 기념일을 만들어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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