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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벨은 영화 애나벨과 컨저링이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편입니다. 이 영화들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애나벨은 미국 코네티컷 주 오컬트 뮤지엄이라는 박물관에 보관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박물관이 폐쇠되어 들어갈 순 없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애나벨 말고도 많은 악령이 담겼다고 하는 물건들이 있지만 10,000건 이상의 심령 현상을 조사하고 해결했던 워렌 부부는 그 무엇도 애나벨의 공포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평했습니다.

 

애나벨에 담긴 실화

1970년 뉴옥 하드 포드 간호학과 학생이었던 스물여덟 살 도나는 어머니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을 하나 받게 됩니다. 도나는 인형을 마음에 들어하며 자신의 침대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에나벨 실제 인형 모습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룸메이트인 엔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 인형의 위치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던 것이죠. 처음에는 자신이 잠을 뒤척이며 건든 것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며칠이 지나서 이것은 단순히 기분탓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어느날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인형이 다른 방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인형은 관절이 없는 봉제 인형으로 무릎을 꿇는 자세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같은 포즈로 취해보려 이리저리 만져보았으나 수십 번을 시도해도 같은 자세를 만드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 거의 매번 외출했다 돌아오면 다른방에서 발견이 되거나 다리를 꼬거나, 팔짱을 끼는 등 할 수 없는 포즈를 취하며 도나와 엔지를 반겼습니다.

더 소름돋는 일화도 있었는데 어느 날 오래된 양피지 조각에 연필로 '헬프 루'라는 메시지가 발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피지는 그녀들의 집안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고 적혀있는 루 라는 인물은 엔지의 약혼남이었습니다.

영화 에나벨의 한 장면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들은 자신의 집에 괴한이 침임하여 인형을 움직이고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누군가가 집에 몰래 들어오면 흔적이 남게끔 현관문과 창문에 표식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인형의 자리는 똑같이 바뀌었지만 그 누구도 침입한 흔적은 없었습니다. 이에 그녀들은 당시 초자연 현상들을 방영하던 'Circus of the supernature' 이라는 프로그램에 제보하게 됩니다.

사연에 관심이 생긴 프로그램 팀에서는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심령학자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심령학자가 말하기를 '인형의 원래 주인은 7살 정도 되는 소녀이다. 그 소녀의 이름은 애나벨이었는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그 영혼이 자신이 아끼던 인형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동정심이 생긴 도나와 엔지는 인형에게 애나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들이 계속 데리고 있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엔지의 약혼남인 루는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하루 빨리 인형을 버리든가, 태워버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도나와 엔지는 인형이 가끔 움직일 뿐 해를 끼치지는 않기 때문에 같이 살아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며 루를 설득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루는 엔지를 만나러 아파트에 방문하게 됩니다.

아직 수업을 마치기 전이었던 도나와 엔지를 기다리다가 잠이 든 루는 그대로 가위에 눌리게 되는데 간신히 눈을 뜬 루는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애나벨과 눈이 마주치게 됩니다.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애나벨이 갑자기 솜뭉치로 된 인형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힘으로 루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루는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깬 루의 가슴팍에는 누군가 발톱으로 할퀸 듯한 세 줄의 선명하고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애나벨 안에 들어 있는 영혼이 절대 착하지 않다고 확신한 그들은 유명한 워렌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도움 요청에 응답한 워렌 부부는 엑소시즘을 진행했는데 인형 안에 들어 있는 것이 7살 소녀가 아닌, 소녀 행세를 하며 낄낄대는 사악한 악마라는 사실을 알아 의식을 마친 워렌 부부는 인형을 박물관으로 회수하려 했습니다. 본인들의 차로 이동했는데 악마가 방해할 것을 예상한 그들은 일부로 인적이 드문 갓길로 차를 몰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는 몇번이나 알 수 없는 오작동을 일으켰고 한번은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한 후에도 한번더 성수로 정화하고 잠금장치가 있는 나무상자에 넣고 봉인하였습니다.

 

애나벨의 저주의 끝?

워렌 부부는 박물관에 있는 다른 물건들은 정화의식을 거치면 악마의 힘들을 다 소멸시켰지만 애나벨 만은 예외라며 앞으로도 쭉 그럴것이다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박물관에 보관 후에도 몇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한번은 박물관에 방문한 어느 교인이 있었는데 그 교인은 애나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이런말을 했습니다.

" 저 인형은 아무 것도 할 수없다. 모든 것은 사람들의 불안이 만든 허구일 뿐이다."

이 말을 한 교인은 집으로 가던 중 실제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습니다.

박물관에 있는 에나벨

또 다른 사건은 박물관에 한 젊은 커플이 왔었습니다. 그들은 박물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애나벨이 들어있는 나무상자 자물쇠를 만지며 장난을 쳤다고 합니다. 그러고선 커플 중 남자가 애나벨을 흔들며

" 니가 진짜 악마라면 어디 한 번 저주를 내려봐"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커플은 결국 박물관에서 쫓겨났고, 세 시간 뒤 오토바이 사고로 남자는 사망하게 되었고 여자는 의식 불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의식이 돌아온 여자의 증언에 따르면 오토바이가 갑자기 제어가 되지 않았고, 그대로 나무를 향해 돌진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애나벨 안에는 악마가 사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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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발자국

1855년 2월 9일 영국 이스트 데본주에 큰 눈이 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눈 위에 말발굽 모양의 발자국이 일직선으로 100마일 가량 이어져있었습니다. 이는 160km로 엄청난 거리였는데 단 하루사이에 쉬지않고 직선형태로 생긴 발자국에 여러 언론사를 통해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더욱더 미스터리한 점은 이 발자국은 중간에 담벼락 같은 장애물에 막히면 마치 담벼락을 통과한 것처럼 담벼락 바로 뒤에 발자국이 이어져 있었으며 건초더미같은 것을 지날때도 주변에 어지러워진 흔적이 없이 바로 건초더미위에만 이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집 지붕이나 직경 10cm 정도 되는 파이프 위에서도 발견되는 등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곳에도 발자국이 이 태연하게 이어져 있어 악마의 발자국이다라고 이름이 붙혀졌습니다.

 

누구의 발자국 일까?

1. 기구?

지역 주민인 카터 소령의 증언에 따르면 데본 항구에서 띄운 실험용 기구가 있는데 이 기구의 끈에 걸쇠를 늘어뜨린 채 경로를 이탈하여 떠내려가 남긴 자국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주장이 현재까지 나온 주장 중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이 주장도 논란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에 의해 날라갔다기에는 지나치게 일정한 간격이라는 것, 그리고 100km를 넘는 거리를 일정하게 올라갔다 내려가며 자국을 찍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2. 동물?

가장 먼저 지목되었던 원인입니다. 특히 말발자국 같이 생긴 형상에 말이 가장 유력했지만 말이라면 지그재그 형태로 찍혀야하지만 완벽한 직선형태라 말은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는 수달, 오소리 등이 지목되었으나 이도 100km 직선형태를 설명하기 힘들고 직선 중간에 집 지붕이나 담벼락이 있었는데 이를 뛰어넘어 찍었다는 것은 설명이되지 않기때문에 동물의 발자국일 가능성은 많이 낮습니다.

 

과연 이 미스터리한 발자국은 누가 만들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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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덱스 기가스

현재는 스웨덴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코덱스 기가스는 길이 1m에 무게 75kg에 육박하는 책으로써 160마리의 당나귀로부터 얻은 320장의 피지로 만들어졌습니다.  크기와 무게에서 알 수 있듯 이 고서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책들 중 가장 방대한 필사본입니다.

코덱스 기가스의 엄청난 크기

악마의 성경이라 불리는 이유

코덱스 기가스의 다른 명칭은 악마의 성경입니다. 이 거대하고 낡은 고서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1200년대 초, 보헤미아 동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헤르만은 수도원에 엄중한 규율을 어기는 중죄를 지어 산채로 벽 속에 감금되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대로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한 헤르만은 수도원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면 인간의 모든 지식을 담아낸 성서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서 필사는 중죄를 면할 수 있는 성스러운 일이었기에 이런 제안을 했지만 짧아도 몇년이 걸리는 성서 만들기를 하루만에 하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은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헤르만은 작업을 하다 당연하게도 한계를 느낍니다. 그렇게 그는 하늘에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신이 아닌 악마였습니다. 부름에 응한 악마는 헤르만에게 자신의 힘을 빌려주고 대가로 그의 영혼을 가져갑니다.

그렇게 헤르만은 하룻밤 만에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악마의 성경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것이 악마의 성격 코덱스 기가스에 얽힌 전설입니다.

 

코덱스 기가스의 미스터리들

1. 577 페이지의 악마 그림

코덱스 기가스가 악마의 성경이라고 불리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책의 577 페이지에 있습니다. 해당 페이지에는 50cm 크기의 악마 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코덱스 기가스에 그려진 악마

 위의 그림처럼 초록색 얼굴에 뿔, 두갈래로 나누어진 혀를 본 사람들은 헤르만이 영혼을 판 악마의 모습을 책에 넣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 그림은 7대 악마 중 나태를 상징하는 악마인 '벨페고르'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책 어디에도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은 없다고 합니다. 

 

2. 동일한 글씨체

 코덱스 기가스 책의 내부의 문자들은 모두 정교한 라틴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코덱스 기가스의 페이지 전체가 단 한 사람의 필체로 되어 있으며 어디에도 흐트러짐이나 오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문서 전문가인 마이클 굴릭은 코덱스 기가스가 한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필적 감정을 통한 분석 결과 역시 이 모든 페이지의 필체가 한 사람에 의한 것이라고 나타났습니다.

 학자들은 이 책의 페이지를 모두 채울 글씨만 쓰는데 약 5년이 걸리고 삽화까지 직접 그렸다면 최소 15년은 걸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수도사의 생활 패턴을 고려한다면 약 3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필체가 한사람의 것이라는 것은 사실인데 더욱 더 이상한 것은 마치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환경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글씨체가 조금씩은 변화가 생기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상당한 미스테리입니다. 

3. 사라진 8장

13세기경 만들어져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보관해오던 코덱스 기가스는 15세기에 터진 종교 전쟁으로 인해 수도원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당시 코덱스 기가스를 지키려던 수많은 수도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 브로모프 수도원,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 등 주인과 공간이 바뀔 때마다 엄청난 사상자를 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코덱스 기가스가 더욱더 악마의 성경이라고 퍼지는데 불을 지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험난한 변화과정 중에서 코덱스 기가스에 손실된 페이지가 있는데 딱 8페이지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이동과정과 세월에 딱 8페이지만 사라진 것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은 해당 페이지에는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훼손시킨것이 아니냐는 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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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부터 17세기의 집단 광기 유행 - 마녀사냥

14세기부터 17세기 사이 유럽에는 종교 재판이라는 이름의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약 300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같은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피고는 누구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숨어서 사는 사람, 타인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사람 심지어 이미 마녀라고 지목을 받아 투옥되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목해 함께 사형대에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이 종교 재판이 바로 그 유명한 마녀사냥입니다. 

고문받는 마녀

당연하게도 마녀로 지목된 이들은 주술을 사용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벌어진 전쟁, 기근, 전염병이라는 불행을 탓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목되어 왔던 이들은 누군가의 변호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마녀 재판에 사용되는 모든 비용은 마녀 본인에게 청구되었습니다. 마녀로 지목된 이는 대부분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그들이 죽고 나면 재산을 몰수하여 재판관들의 배를 불리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마녀를 가려내는 방법

재판의 시작은 보통 누군가의 고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발을 당한 사람이 재판에 올려지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가 마녀인지 아닌지를 증명을 했어야했는데 그 과정은 보통 4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1. 눈물 시험

 우선 당시의 관념으로 마녀는 사악한 존재이기에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것이 사실로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마녀재판에 올라간 사람은 눈물 시험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걸쳐야했습니다.

 

2. 바늘 시험

그러나 이것을 통과하게 되면 악마의 도움을 받아 눈물을 흘린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는 바늘 시험이라는 단계라는 테스트를 거쳐야 했습니다. 당시에 마녀들은 악마와 계약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가지고 있는데 이 흔적은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피도 흐르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마녀로 몰기 위해 사마귀를 찾는 사람들('마녀시험'-톰킨스 H,매티슨)

그래서 재판관들은 마녀로 지목된 사람들을 나체로 관찰하다가 신체의 특이한 부분이 있으면 바늘로 찔러 피가 나오는지 혹은 고통을 느끼는지 관찰했습니다.

 

3. 불 시험 

 하지만 어이없게도 여기서도 피가 나오거나 고통을 느낄 경우 악마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세 번째 시험으로는 달구어진 쇠로 마녀를 지지거나 불판 위를 걷게하는 방식의 끔찍한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서 상처가 생기지 않으면 마녀라는 것이었죠. 보통의 인간은 이 시험에서 절대로 상처가 나지 않을 수 없고 또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기에 재판관들은 이 시험을 승낙하는 것 자체가 마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4. 물 시험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에 던져 넣어 물 밖으로 밀려 나오는지 봤습니다.

예로부터 물은 아주 깨끗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왔기에 악한 것이 들어가면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만약 마녀로 판단되는 이가 밖으로 밀려나오지 않고 물 안에 있게 되면 마녀가 아닌 것이고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오면 마녀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마녀는 없었기에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올리는 없고 물 안에서 밀려나오지 않으면 익사로 죽음을 맞이하게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재판 자체로 사형이나 마찬가지였던 시험이었습니다

 

마녀 재판의 배경

사실 처음부터 마녀가 사악한 존재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혼자 사는 여성들 아이들과 친밀한 존재로 주술을 사용하여 약한 이들을 돕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의사, 약사, 산파 , 무속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마녀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1317년 요한 22세에 교황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암살 자체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교황을 죽이러 했던 것이 다름 아닌 교회의 고위 사제였으며 암살 방법은 마녀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주술이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계기로 주술은 악하고 잘못된 것으로 인식되었고 마녀 또한 다정하고 정겨운 존재가 아니라 사악한 존재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484년 12월 5일 인노첸시오 교황은 <지고의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라는 칙서를 발표하는데 그 내용은 '사악한 주술을 행하는 주술사들과 마녀를 단죄하고 이들에 대한 이단 신문관의 조사를 지지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교황이 마녀 사냥을 허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486년 독일의 이단 심문관 하인리히 크라메르는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이라는 책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책의 내용은 마녀의 정의, 마녀를 구별하는 법 등이 적혀있었는데 마녀의 피해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문으로 인한 자백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 책은 마녀 사냥의 기초가 된 동시에 마녀 사냥에 기름을 끼얹게 됩니다. 

 

마녀사냥의 끝

시간이 지나 1680년 유럽에서는 마녀를 처벌하는 것이 아닌 마녀인 척 하는 이들을 처벌하라는 법령이 선포됩니다. 이때부터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이 끝나갔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2000년 3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억과 화해 : 교회의 과거의 잘못> 이라는 문건을 발표합니다. 이 문건으로 과거 교회가 신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처참한 잘못을 최초로 인정하고 마녀 사냥에 대하여 전 세계적으로 사죄한 것입니다.  그렇게 집단 광기로 퍼져버린 마녀 사냥은 카톨릭의 인정과 사과를 끝으로 역사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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