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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의 탄생

1971년 7월 4일 샌프란시스코의 한 동물원에서 암컷 새끼 고릴라 한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사육사들은 이 새끼 고릴라에게 일본어로 불꽃의 아이라는 뜻을 가진 하나비코란 이름을 붙여줬고 자라면서 애칭인 코코로 많이 불리게 되었습니다.

자연 상태가 아닌 동물원에서 새끼 고릴라가 태어나는 경우는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태어나자마자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코코는 동물원의 의료시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피터슨 박사와의 만남

그렇게 무리와 어미의 품에서 떨어진 채 인간들 사이에서 치료받던 코코에게 스탠퍼드대 심리학 박사 페니 피터슨이 영장류와 인간 사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피터슨 박사는 스탠퍼드 대학과 동물원의 배려로 1974년부터 포크의 거처를 옮기고 거의 24시간을 함께 지내게 됩니다.

피터슨 박사와 코코의 만남

이후 피터슨 박사는 손짓으로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수화를 코코에게 가르쳐 인간과 골라 사이의 언어 소통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이 실험에 대해 언론에 나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짐승인 고릴라가 인간이랑 소통을 할 수 있을리 없고 하더라도 그저 배운 제스쳐를 따라하는 수준이라고 폄하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피터슨 박사는 인내심을 가진 채 실험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코코와의 의사소통

이러한 피터슨 박사의 믿음에 보답하듯 며칠이 지나자 반지라는 단어를 모르던 코코가 당시 조련사가 끼고 있던 반지를 가르키며 손가락과 팔찌란 단어를 수화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화의 제스쳐를 따라한 것이 아닌 단어를 이해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코코는 자신의 상태와 원하는 것을 간단한 단어들을 조합해 박사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능력을 꽃피우던 코코는 네 살이 될 무렵인 1975년엔 무려 170여 개의 단어를 깨우쳤습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고릴라 코코의 이야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표지로 실리며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다 줬습니다.

 

아기 고양이를 사랑한 코코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뒤 인간의 나이로 성년이 다 되어 가던 무렵 평소 새끼 고양이 세 마리에 관한 동화에 푹 빠져 있던 코코가 피터슨 박사에게 자신이 직접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는 수아를 표현했습니다. 이에 피터슨 박사는 어미에게 버림 받아 유기묘로 남겨진 진짜 새끼 고양이를 입양해서 코코에게 안겨줍니다.

코코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다는 듯이 새끼 고양이를 가볍게 들어올려 품에 앉자 새끼 고양이 역시 진짜 자기 어미를 만난 것 마냥 너무나 편안한 듯 온몸을 코코에게 맡겼습니다.

이 새끼 고양이를 받고 코코는 회색, 털 뭉치, 사랑한다라는 수화로 당시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만남은 고작 6개만에 끝이나고 맙니다.

코코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우리에서 빠져나간 고양이가 지나가던 차에 치여 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은 코코는 혼자 있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진짜 자식을 잃은 어미처럼 행동했는데 이것은 같은 종이 아닌 다른 생물의 죽음을 인지하며 슬퍼하는 공감 능력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줬습니다.

이후 코코와 피터슨 박사의 교감은 2018년 코코가 4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코코에 대한 세상의 평가

코코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아주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코코가 고릴라와 인간 두 종을 뛰어넘는 소통과 공감을 다룬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일부는 연구를 핑계 삼아 강제로 시설에 갇힌 생활만을 강요받은 평생을 다른 고릴라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한 동물 학대로 하기도 합니다. 평가가 어떻든 간에 분명한 사실은 코코는 인간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고릴라이며 다른 종인 고양이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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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의 특징

얼룩말의 평균 몸높이는 140cm 이며 몸무게는 160~500kg 로 주로 아프리카 대륙의 사바나 지역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얼룩말은 사실 이름에 '말'이 들어가지만 말보다는 당나귀에 더 가깝습니다. 

울음소리도 말보다는 당나귀 울음소리와 비슷하며 개처럼 왈왈 짓는 소리와 유사합니다. 이 우는 소리는 보통 주의를 끌때나 천적의 접근을 눈치 챘을 때 무리에게 알리는 일종의 경보수단입니다. 

 

얼룩말의 줄무늬 

얼룩말의 대표 특징인 줄무늬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맹수를 피하기 위한 위장용이라는 설, 얼룩말들 사이에 신호를 주고 받기 위한 표식, 피부 온도를 떨어뜨리는 쿨링 기능 등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바로 해충을 쫓아내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 말에게 얼룩말처럼 줄무늬를 입히자 가축들의 피를 빠는 파리들이 줄무늬 위에 안착하지 못한 채 충돌하거나 그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다 방향을 180도 돌려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고 합니다.

 

얼룩말의 친구들

 천적들에 대비하여 다른 초식동물들과 공생관계인데 그 중 타조와 기린이랑 가장 친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린은 큰 키로 인한 넓은 시야로 위험 탐지를 하는데 이를 감지하면 얼룩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기린 입장에서는 도움을 받는게 없을것 같지만 다른 초식동물 즉 얼룩말과 함께 있으면 대부분 타겟이 얼룩말이 되기에 서로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조와는 어떤 공생관계가 있을까요?

타조는 시력은 좋지만 청각과 후각이 약합니다. 얼룩말은 반대로 청각과 후각은 강한데 시력이 나쁩니다. 이를 이용해 천적을 감지하면 서로 알려줘 위험을 헤쳐나갑니다. 

 

포악한 성격을 가진 얼룩말

초식동물이기는 하지만 사실 얼룩말은 절대 호락호락한 동물이 아닙니다.

얼룩말도 말과 같이 특유의 강력한 뒷발차기를 가졌는데 이는 다른 포식자들의 두개골과 턱을 순식간에 박살 낼 수 있습니다. 또 생긴것과 다르게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상대에게 똑같은 고통을 줘 저항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신을 공격한 포식자를 역추격할 정도로 초식 동물이라고 하기엔 호전적이고 상당히 더러운 성격을 가져 동물원에서 초식동물 중 사육사들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독한 성격 덕에 옛날부터 이 얼룩말을 가축화 하려고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사실 가축화를 할 가치도 별로 없는 동물입니다. 우선 체구 자체도 몸에 비해 머리가 커서 달리기 속도가 빠르지도 않으며 지구력도 좋지 않아 승마용으로는 완전 탈락입니다.

 게다가 고기가 워낙 맛이 없고 냄새도 이상한 구린내를 풍겨 식용으로 쓰기에도 부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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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코벳의 어린 시절 

1875년 인도에서 태어난 짐 코벳은 어려서부터 사냥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9살 때 부터 엽총으로 표범을 잡으며 열한 명의 형제 자매 중에서도 사냥 실력과 센스가 월등히 높았고 전문적인 사냥꾼들마저 어린 코벳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숲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키운 코벳은 학생의 나이에 접어든 이후 더 이상 무의미한 사냥은 하지 않고 여행을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18세에 학교를 그만둔 뒤 철도에 연료 검사관으로 일을 하다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군에서 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보병 장교까지 진급하게 됩니다.

짐 코벳

공포의 식인 호랑이 참파와트의 등장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07년 인도 정부로 부터 코벳 앞으로 공문이 한 통 도착합니다. 

공문의 내용은 쿠마온 지역 인근에 출몰한 한 마리의 호랑이로 인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정부 측이 사냥꾼을 물색하던 중 코벳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이었습니다.

'참파와트 호랑이'라고 이름 붙은 이 맹수에게 희생당한 사람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그 수가 무려 436 명이었습니다. 정부는 한 마리의 호랑이를 잡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하였지만 참파와트는 이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추적을 피해가며 마을 주민들을 끊임없이 습격했습니다.

이후 정부는 최고의 정예 부대라고 불리는 구르카 용병단까지 파견했지만 이 마저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이 지역의 모든 호랑이와 짐승들을 죽이고 정작 문제의 식인 호랑이는 잡지 못한체 피해가 계속 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참파와트 호랑이

원래 다시는 동물을 사냥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그였지만 이 호랑이 때문에 사람과 동물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직접 호랑이를 사냥하기로 결심합니다. 

 

사냥 시작

코벳은 사냥을 시작하기 전 정부에게 한 가지 사항을 요청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부가 이 호랑이에게 걸린 어마어마한 현상금들을 모두 취소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막대한 현상금은 어리숙한 사냥꾼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에 되려 호랑이에게 사냥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추적을 하는데 있어서도 방해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곧바로 요청을 수락하였습니다.

조사를 시작한 코벳은 발자국과 특징들로 해당 맹수가 8피트 정도(2m 40cm 정도) 크기의 뱅골 호랑이라는 것과 암컷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큰 크기가 아닌 이 호랑이는 피지컬이 아닌 지능적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사냥했다는 뜻이었고 전설의 사냥꾼인 코벳 역시 추적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흔적의 실마리가 보일 것 같으면 사라져 버리고 닿을 것 같다가도 어느새 멀어져 버렸습니다. 이유를 고심하던 코벳은 참파와트가 쇠 냄새에 유독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참파와트는 쇠 냄새를 맡기만 하면 해당 산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고 다른 곳에 다시 나타나 주민들을 습격하는 행태를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참파와트의 약점과 묘수

코벳은 참파와트의 이 사냥 습성을 이용한 하나의 묘수를 떠올립니다.

마을 사람들을 대거 동원하여 농기구를 들고 산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럼 쇠 냄새를 맡은 호랑이는 그것을 피해 산 아래로 내려올 것이고 이때 코벳이 호랑이를 저격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작전은 실행되었고 코벳의 예상대로 아직 인근 산에 머물고 있던 참파 아트는 산 아래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코벳은 덤불 속에서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내려온 참파와트는 그대로 코벳의 총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것이 코벳의 첫 식인 맹수 사냥이었습니다.

 

이는 짐 코벳의 수많은 사냥 중 제일 유명한 일화이며 사람을 가장 많이 잡아먹은 동물 1위로 기네스에 랭크되어 있기도 합니다

 

참파와트를 뛰어넘는 숙적과의 조우 

가장 유명한 스토리는 참파와트 호랑이 이지만 코벳이 진정으로 숙적으로 느꼈던 맹수는 달랐습니다. 

바로 수컷 뱅골 호랑이였던 독신자였습니다. 독신자의 별명은 그가 10년동안 짝이 없이 사람들을 사냥해서 그런 별명이 지어졌는데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1920년 1930년까지 1년 동안 활동하며 200 이상의 사람을 포식하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독신자가 주로 활동하던 일대의 숲을 모조리 벌목해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터전을 잃은 호랑이는 살던 곳을 떠나 새 보금자리에 정착하였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짐 코벳이 살던 집 근처의 숲이었습니다. 

 

1930년 겨울 산책을 하던 코벳은 이제껏 자신이 본 어떠한 호랑이보다 큰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합니다. 

발자국으로 추측되는 호랑이의 크기는 무려 3미터가 넘었습니다. 코벳은 곧바로 총을 꺼내들고 경계태세를 취했으나 근거리에서 거대한 호랑이를 마주치기에는 부담이 있어 서둘러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코벳은 집 근처 호수로 나가 흡연을 하던 중 독신자와 처음 마주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코벳은 "호랑이는 덤불 속에서 느리게 걸어 나오더니 나에게 두 눈을 고정시킨 채 호수에서 목을 축이고 돌아갔다. 그것은 내가 살면서 본 어떠한 광경보다도 공정하고 아름다웠다. " 라고 합니다.

 

 참파와트 호랑이가 늙고 병든 영악한 호랑이였다면 파월과 호랑이는 지능과 더불어 크기마저 거대한 말 그대로 괴수였습니다. 코벳은 이 악명높은 호랑이를 꼭 잡을 것을 다시 다짐하고는 호랑이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독신자 사냥 

추적 중 코벳은 독신자의 울음소리로 추측되는 포효를 듣게 됩니다. 그는 소리에 민감한 호랑이를 유인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 호랑이 울음소리를 흉내내 유인에 성공하게 되는데 코벳의 계산에는 그가 30초쯤 후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 자세를 잡은 뒤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독신자는 코벳이 숫자를 8까지 세웠을 때 이미 10미터 앞의 덤불까지 접근하여 거대한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코벳은 숨을 죽이고 천천히 총구를 돌려 독신자의 머리를 겨냥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독신자의 위험에 기가 눌려버린 코벳은 명포수답지 않은 실수를 해버렸고 조준하던 머리의 정 중앙이 아닌 오른쪽 눈 아래를 맞춥니다.

그리고 총이 맞은 독신자는 숲이 떠나가라 포요하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위 10m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나무를 찢어버리는 독신자의 분노에 완전히 공포에 질려버린 코벳은 그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가만히 엎드린 상태로 독신자가 난동을 멈출 때까지 30분을 숨죽인 채 공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총을 장전하는 소리마저 낼 수 없어 한 자세로 가만히 들고 있느라 팔에 경련까지 일어났습니다.

독신자가 몸부림을 멈추자 코벳은 엎드린 상태로 천천히 뒤로 빠졌고 거리를 충분히 벌린 뒤에 일어나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독신자가 코벳을 추격하지 않은 덕에 그는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준비를 마친 후 다시 숲으로 향했습니다.

 코벳은 큰 상처를 입은 독신자가 멀리 이동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였고 근처 개울에 잠복합니다. 사냥을 할 여력이 되지 않으면 목이라도 추기러 올 것이라고 추측한 것인데 얼마가지 않아 호랑이 한마리가 피를 흘리며 다가왔습니다.

코벳이 독신자를 발견했을 때 거대한 수컷 호랑이는 이미 뛰어들 자세를 취하고 코벳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코벳은 저번처럼 자칫 망설이기라도 하면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10년 넘게 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파월가의 독신자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파월가의 독신자를 사냥 성공한 코벳

 

전설의 마침표

 이 후로도 식인 맹수 사냥을 이어가던 코벳은 동물들의 살 곳이나 먹을거리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러한 사태가 끊임없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인도 정부 측에 요청하여 야생 동물들이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국립공원 건립을 제안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동물 보호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기 전이었으며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국립공원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식인 맹수들을 사냥하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던 그의 인도 정부 측도 코벳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수락하여 공원은 그의 이름을 따 코벳 공원이 되었습니다. 

 

 짐 코벳은 63세 때 사냥한 식인 호랑이를 마지막으로 일생을 바친 포수직을 은퇴합니다.

그 후 케냐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자신의 여섯 번째 자서전 지필을 마치고 1955년 4월 19일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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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악어를 구조하다. 


1989년 코스타리카 어부인 치토는 총에 맞아 죽어가는 악어를 봤습니다. 치토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 악어를 집 뒷뜰로 데려야 6개월간 간호를 해줬습니다. 6개월 간호 후 다시 야생으로 보내주려고 인근 호수에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악어가 치토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같이 가려고 하고 억지로 보내려고 해도 애교를 부리며 가기 싫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렇게 둘의 긴 우정은 시작되었습니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둘


치토는 악어에게 포초라는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고 대부분의 시간을 둘이 함께 보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훈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둘은 호흡을 맞추며 꼬리들기, 머리 들기, 악수, 어부바, 윙크 등 여러가지 재롱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며 당연히 포초는 마을의 명물이 됐고, 이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와 많은 수익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영원한 이별

그렇게 둘은 22년동안 꼭 붙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포초가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한번도 이런적 없었고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포초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포초는 어느 그늘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습니다. 이때가 2011년 10월 12일 50세 정도의 나이로 자연사한 것입니다. 
 아마 마지막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슬퍼할 친구를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포초의 죽음을 슬퍼하는 치토


 포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참여할 정도로 성대한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20201년 포초가 떠난지 10년쨰 되던해 치토에게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에서 치토의 말은 덤덤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나는 포초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내가 저 세상에 가면 녀석은 날 마중나올 거다." 

정말 악어라도 이렇게 친구가 될 수 있네요. 한번 은혜를 입으니 죽을때까지 절친이 되는걸보면 가끔 동물이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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